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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6. 16世 〉14. <부정공>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소암공휘언신묘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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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부정공>야촌공휘중망묘표(野村公諱重望墓表)
野村公諱重望墓表 惟我玉川氏世德自農隱虔谷兩府君啓佑以來若相好公之篤倫埍箎三灘公之學文灒德先輩尙論巳定無容更評其後一傳而有諱懋號撫松亭禮賓寺參奉與金晩德大器友善是生諱晫宣敎郞於府君爲高祖也曾祖諱時聖號觀水亭孝子旌閭祖諱維綱考諱之珣號月峰俱有隱德妣廣州李氏章遠女有婦德府君以 顯宗壬寅四月二十八日早襲庭訓善事父母扇枕懷橘之誠居喪踰禮無愧古人友于弟兄共衾共卓復親相好遺風修身以道御家以禮丙寅八月十五日卒墓本面大龜村後栗木嶝亥坐原配長澤高氏參奉傅礪女莊淑有壺儀乙巳三月二十五日生丙申二月二十五日卒葬用魯衛禮無嗣以弟泰望之子器夏爲子器夏從金渼湖尹屛溪兩先生遊學識德行爲世推重孫曰聖淳金圭大薛弘迪二女壻也曾孫載根澤根邦根出后餘不盡錄噫府君言行攷諸家版雖是寂寥數語而皆於至誠惻恒足爲傳世垂範故家有賢子能繼其業是豈非不食之報歟是以不揆僭越畧述如右 戊申五月 日 八世孫 東勳 撰 야촌공휘중망묘표(野村公諱重望墓表) 생각하건대 우리 옥천조씨의 세덕은 농은(農隱)·건곡(虔谷) 두 부군이 열어 도운이래로 상호공의 천륜을 두텁게 하여 흙장구를 치고 피리를 불며, 삼탄공의 학문을 힘쓰고 덕을 숨긴 것은 선배의 높은 의논이 이미 정하여 졌으므로, 다시 평론 할 여지가 없고 뒤에 한번 전하여 휘 무(懋)는 호가 무송정(撫松亭)이며, 예빈시 참봉으로 만덕(晚德) 김대기(金大器)와 익우(益友)였고, 휘 탁(晫) 선교랑은 부군의 고조였다. 증조 휘 시성(時聖)은 호가 관수정(觀水亭)인데 효자로 정포하였으며, 조 휘 유강(維綱)이요, 고의 휘는 지순(之珣)이며, 호는 월봉(月峰)인데 함께 숨은 덕이 있었으며, 비는 광주이씨 장원(章遠)의 딸로 부덕이 있었다. 부군이 현종 임인년(一六六二) 四월 二十八일에 출생하여 일찌기 가정 교훈을 이어 받아 부모를 잘 섬겨 베개머리에 부채질을 끊이지 않았고, 유자를 구해다 드리는 정성을 다하고 상사(喪事)때 예제를 다하여 옛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형제가 우애하여 이불을 함께 하고 식탁을 같이 하니, 다시 상호유풍(相好遺風)을 보겠고 공은 또 몸을 닦고 집을 예로 다스렸다. 병인년 八월 十五일에 별세하니, 본면(本面) 대구 마을(大九村) 뒤 밤나무등(栗木燈) 해좌원(亥坐原)에 안장하였다. 배는 장택고씨(長澤高氏) 참봉 부여(傅礪)의 딸로 씩씩하고 맑은 곤범(閫範)이 있었으며, 을사년 三월 二十五일에 출생하여 병신년 二월 二十五일에 별세하니, 노위례(魯衛禮)를 써 장사하였다. 아들이 없어 아우 태망(泰望)의 아들 기하(器夏)를 양자로 삼으니, 기하가 김미호(金渼湖)·윤병계(尹屛溪) 두 선생을 종유하여 학식과 덕망을 세상에서 추중하였고, 손자는 성순(聖淳)·김규대(金圭大)·설홍적(薛弘迪)의 처며, 증손 재근(載根)·택근(澤根)·방근(邦根)은 출후하고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 아! 부군의 말과 행실을 모든 가첩에 고증하여 얻은 것이 비록 적요(寂寥)한 두어 마디이지만 모두 지성 칙탄함이 세상에 전하여 해범이 될만하고, 집에 어진 아들이 있어 능히 업을 이었으니, 어찌 갈지않고 먹는 보시가 아니겠는가. 이로써 참월함을 헤아리지 않고 대략 위와 같이 기술한다. 八세손(世孫) 동훈(東勳)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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